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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병사의 등을 향해 내어질러진 칼은 그의 등을 뚫고 가슴까지 뻗어나갔다. 칼이 몸에 박힌 채 병사는 눈을 부릅뜨고 거친 숨을 쉬어대었다.

 

“아, 그러기에 왜….”

 

김학령은 병사가 흘린 찐쌀이 있는 곳을 다시 바라보고서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는 총이 없었다. 다만 흙 밖으로 드러난 굵은 나무뿌리가 총과 같이 보였을 뿐이었다.

 

“이봐.”

 

김학령은 죽어가는 병사를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난 몰랐어. 난 몰랐다고.”

 

병사는 크게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김학령의 진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는 눈짓을 보낸 후 숨을 거두었다.

 

“난 몰랐어, 몰랐다고.”

 

김학령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같은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어느덧 해는 완전히 져서 사방은 어둠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 처음으로 사람을 죽여 본 김학령은 땅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이봐 약속을 지켜야지?”

 

음산한 목소리가 김학령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귀신이 나타난 것이었지만 김학령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두려움 따위는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난 사람을 죽였어. 그것도 모자라서 목을 베어 들고 거기까지 가라고?”

“낮에도 그랬듯이 내가 도와주지. 너의 발은 새털처럼 가벼워 질 것이고 저 놈의 목은 마른 솜뭉치 같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아니야 이것으로 됐어. 날 계속 괴롭히든지 어찌하든지 마음대로 해.”

 

귀신은 김학령의 말에 깔깔 웃어 제쳤다.

 

“그래 마음대로 해. 내 원한은 이제 풀린 거나 다름없으니.”

 

김학령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다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했지? 네 원한이라고?”

 

“그럼 이 자 하나 죽여 머리를 바친다고 그 수많은 혼령들의 마음이 위안을 받을 거라 생각한거야? 우리 같은 귀신들은 너같이 귀신을 볼 수 있는 업보를 타고난 자에게 약간의 두려움을 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산 사람에게는 모습도 보일 수 없고 아무런 짓도 할 수 없어. 그래서 너를 이용해 묵은 원한을 갚은 것이지.”

 

“추잡한 잡귀! 날 속였어!”

 

김학령은 돌을 집어 귀신에게 던졌지만 돌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난 저 놈의 전생에 원한이 있었다. 그리고 저 사람과 나와 너와도 전생의 연이 얽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 뿐이니 날 원망하지 말아라. 어쨌건 너로 인해 난 저세상으로 갈 수 있게 되었으니 넌 그만큼 업보를 던 것이 아니겠느냐?”

 

귀신은 조용히 사라졌고 김학령은 계속 흐느끼며 시체를 바라보았다.

 

다음날, 시체 옆에서 밤을 지새운 김학령은 시체를 업고 산을 내려왔다. 성치 않은 다리를 후들거리며 빳빳하게 굳어 무거워진 일본병사의 시체를 업고 길을 가는 김학령의 모습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미안하고 미안하이. 자네는 시대로 보면 원수나 내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기도 하네. 그런 자네를 내가 해쳤으니 자네가 죽어서 편히 눈을 감지 못할 듯 하이. 내 이제 그 집의 느티나무 아래 자네의 육신을 누이고 제사를 지낼 터이니 부디 다음 생에는 좋은 인연으로 만나 세나.”

 

김학령은 끊임없이 같은 말을 되풀이 하며 그동안 걸어 왔던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덧붙이는 글 |
1.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태그:#소설, #우금치, #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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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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